2021년 개봉 당시 《모가디슈》는 이미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2025년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보는 감정은 훨씬 더 깊다. 단순한 전쟁영화도 아니고, 고작 ‘남북 대사관 탈출극’도 아니다. 《모가디슈》는 전쟁의 순간에도 사람은 인간일 수 있는가를 묻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큐멘터리도, 뉴스도, 교과서도 해내지 못한 방식으로 관객의 심장을 흔든다.
실제 배경: 1991년 소말리아, “탈출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는 이미 국가의 기능을 상실한 도시였다. 현지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은 거리마다 불길과 총성을 남겼고, 그 속에서 대한민국 대사관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을 도모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상해 보자. 가장 극단적인 이념을 가진 두 나라의 외교관들이 총알이 오가는 시가지를 함께 뚫고, 하나의 차량 행렬에 몸을 실어야 했던 상황을. 그것은 정치도, 국적도, 체제도 아닌, 인간과 인간이 마주한 극한의 순간이었다.
당시 대한민국 대사관 직원들은 탄약도 없고, 지원도 없는 절망 속에서 북한 외교관들에게 손을 내민다. 그리고 놀랍게도 북한 측은 그 손을 잡는다. 이 단순한 “함께 탈출하자”는 제안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 앞에서 사람의 얼굴을 지킨 선택이었다.
이 실화는 그 자체만으로 모든 픽션을 압도한다.
줄거리: “그날, 우리는 같은 차를 타고 있었다”
《모가디슈》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한국 대사관과 북한 대사관은 각각 고립된 채로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두 나라의 대사(김윤석, 허준호)는 처음엔 경계하고 의심하지만, 전쟁은 둘 사이의 모든 장벽을 조금씩 무너뜨린다.
가장 극적인 순간은 북한 대사관 직원들과 가족들이 한국 대사관에 피신해 오며 벌어진다. 아이들이 공포에 울고, 군화 소리에 창문이 떨리고, 어디로 튈지 모를 총알 속에서 남과 북은 한 방에 함께 모인다.
그 장면을 보며 울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는 그 장면에서, 이 영화가 단순히 재현이 아니라 그 시간의 감정을 온몸으로 되살리는 작업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차량 탈출 시퀀스. 수십 발의 총탄이 박히는 차량, 버려진 도심 속 숨 막히는 정적, 어느 누구도 “우리가 살아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액셀을 밟고 도심을 질주하는 장면.
관객은 단순한 영화 장면이 아니라, 그 순간 차에 탄 한 명이 되어버린다.
관전 포인트: 정치는 인간보다 앞설 수 없다
《모가디슈》는 사실상 전쟁영화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인간이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영화다. 류승완 감독은 무력이나 피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잔인한 순간에도 담담한 현실감으로 전장을 묘사한다. 그 방식은 마치 유시민 작가가 전쟁터를 서술한다면 그럴 것 같은 문체다. 뜨겁지 않지만 아프고, 차갑지 않지만 깊은.
특히, 김윤석과 허준호가 눈빛을 주고받는 장면. “나는 당신을 믿지 않지만, 지금은 인간으로서 함께하겠다.” 이 무언의 합의는 30년이 지난 지금, 분단을 살아가는 한국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 영화의 진짜 메시지는 “남북이 협력했다”가 아니다. 극한 상황에서 국적과 체제를 넘어서 ‘누구의 생명도 놓지 않겠다는 태도’가 얼마나 인간적인 선택인지를 말하는 것이다.
결론: 픽션보다 진실이 강한 이유
2025년, 한국은 여전히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고, 지구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총성이 울린다. 하지만 《모가디슈》는 보여준다. 우리가 정치보다 먼저 인간이고, 국가보다 앞서 사람이었던 순간이 있었다는 것을.
이 영화는 단지 실화 기반 탈출극이 아니다. 그건 인류애의 작은 서사시이며, 분단의 땅에서 피어난 유일한 희망의 기록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기록 앞에서, 침묵하거나, 눈물짓거나, 혹은 결심하게 된다. 다시는 그런 날이 반복되지 않기를. 그리고, 그런 날이 또 온다 해도 사람을 향해 손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