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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레인스포팅 재해석 (청춘, 폐허, 자유의 역설)

by dahebojago 2025.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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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레인 스포팅 포스터

《트레인스포팅》은 금지 약물, 청춘, 도망, 배신 같은 단어로 요약될 수 없다. 이 영화는 무너진 시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거부’를 택한 젊은이들의 초상이며, 동시에 그 거부조차 끝내 시스템에 편입될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자유의 역설이다. 렌튼의 마지막 대사는 삶을 선택한 자의 환희가 아닌,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는 자의 체념 섞인 독백처럼 들린다. 이 영화는 세상을 향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갇힌 질문을 폭로하는 영화다.

1. 선택하지 않겠다는 선택 – 금지 약물은 파멸이 아닌 생존

렌튼과 그의 친구들은 단순한 약물 의존자가 아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시대가 만든 부산물이다. 우리는 종종 그들을 비난하거나 연민한다. 하지만 그들이 빠진 것은 물질 그 자체가 아니라, 현실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잠깐의 무중력 상태’였다.

“Choose life.” 이 문장은 영화의 가장 유명한 대사이자, 동시에 가장 슬픈 농담이다. 세탁기, 직장, 가족, 규칙, 은퇴, 연금… 그 모든 ‘정상적 삶의 리스트’가 렌튼에게는 질식감으로 다가온다.

그는 선택하지 않는다. 아니, 선택하지 않겠다는 선택을 한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사회 속에서,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현실을 끊는 방식’뿐이었다.

금지 약물은 그래서 도피가 아니다. 그건 자기 존재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방어막이다.

2. 대처리즘이 남긴 폐허 속의 젊음

1980~90년대, 마가렛 대처는 영국을 변화시켰다. 그 변화는 일부에게는 ‘자유시장 경제’라는 이름의 기회였지만, 다수에게는 삶의 기반이 무너지는 구조조정의 칼날이었다.

광산은 폐쇄되고, 공장은 무너지고, 노동계층은 분열되었으며, 교육과 복지는 ‘자기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줄어들었다. 그렇게 공동체는 해체되었고, 남겨진 것은 고립된 개인이었다.

이 청춘들이 금지 약물을 택한 이유는 쾌락이 아니라 사회가 아무것도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의미한 학교 교육, 희망 없는 노동, 사라진 소속감. 그 상황 속에서 “Choose washing machines?” “Choose mortgage?” 이런 말은 풍자라기보다는 절규에 가깝다.

3. 자유의 얼굴은 때로 잔인하다

렌튼은 결국 금지 약물에서 벗어나려 한다. 친구 스퍼드, 비곤, 시몬과의 끈을 끊어내고, 자신만의 탈출을 준비한다. 그는 ‘자유’를 선택하지만, 그 자유의 방식은 공동체의 배신이다.

그는 살아남았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것을 잃었다. 그는 사회가 원하는 ‘소비자’가 되었고, 그 대가로 그는 친구, 과거, 죄책감을 짊어져야 했다. “Choose life”는 그래서 해방의 외침이 아니라, 적응의 선언이다.

4. 이 시대의 렌튼들에게

이 영화는 오래된 영화가 아니다. 지금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성공, 안정, 취업, 결혼, 내 집 마련, 1등급, 1억, 10년 후.

그러나 그 선택지들이 모든 사람에게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이 시대에도 렌튼은 있다. 그리고 그 렌튼들은 묻고 있다. “나는 진짜 나의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거짓된 삶인가?”

결론: 거부할 수 있는 용기,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트레인스포팅》은 현실을 포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추악하고, 더럽고, 절망스럽다. 그러나 동시에 진실하다. 이 영화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선택할 수 없는 삶’ 속에서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를 묻는다.

렌튼은 모든 것을 버리고 살아남았지만, 관객은 마지막 장면에서 알게 된다. 우리는 모두, 아직도 도망치는 중이다. 그게 현실이라는 시스템이 우리에게 허락한 단 하나의 자유일지도 모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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