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SBS가 방영한 드라마 ‘모래시계’는 단순한 대중 오락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통증을 처음으로 브라운관에 옮긴 ‘공론의 서사’였다. 특정 인물의 일대기가 아닌, 공권력, 조직폭력배, 부패 권력의 유착,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법과 양심의 충돌을 정면으로 그렸다. 특히 검사 ‘강우석’이라는 인물은 홍준표 전 검사의 검사 시절을 연상시키는 강직한 공직자상으로 당시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2025년에 이르렀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 작품은 ‘기억의 문서’로 남을 수 있을까? 아니면 신화적 영웅서사로서의 한계를 드러낼까?
이 글은 ‘모래시계’를 양날의 칼처럼 들여다본다. 한쪽 면은 이 드라마가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변곡점이었는지를 조명하고, 다른 한쪽 면은 그 서사와 인물 설정이 가진 맹점과 미화의 위험성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1. 의의 – 침묵하던 시대를 말하게 만든 최초의 드라마
‘모래시계’는 공공연한 침묵을 깨뜨렸다. 1980년 5월 광주, 삼청교육대, 정치깡패의 탄생과 소멸, 군부 권력과 경제 권력의 야합. 이 모든 것을 지상파 드라마가 황금시간대에 내보냈다는 것 자체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시청률은 64%를 넘었고, 그중 많은 시청자들은 처음으로 한국 현대사의 검은 그림자를 직면했다. 특히 강우석 검사의 캐릭터는 ‘법은 사람을 지키기 위한 도구’라는 원칙을 시청자에게 다시 상기시켰다. 그는 유혹과 협박, 심지어 내부 조직의 압박 속에서도 굽히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이 캐릭터는 홍준표 검사 시절의 실존적 상징성과 겹친다.
홍준표는 실제로 1980~90년대 검사 시절, 조직폭력배 수사, 정치권력과 조폭 연계 추적, 검찰 내 비리 적발 등 불의와의 타협 없는 공직자 태도를 보여주며 '강직한 검사'라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모래시계’ 속 강우석은 그러한 실재를 허구로 재해석한 결과물이며, 당시 대중은 이 인물을 통해 ‘그래도 공정한 누군가는 있다’는 위로를 얻었다.
2. 한계 – 미화된 남성서사, 정의의 도식화
그러나 이 드라마는 완벽하지 않다. 정의는 종종 남성 영웅을 통해 구현되며, 구조적 폭력의 책임은 흐릿해진다.
첫째, 여성 캐릭터는 기능적이다. 고현정이 연기한 ‘혜린’은 극 중 유일하게 인간적 고뇌를 가진 인물이지만, 그녀의 역할은 ‘희생적 사랑’이라는 테두리를 넘어서지 못한다. 결국 여성은 비극을 위한 장치이거나, 남성 주인공의 감정선 강화 수단으로 소비된다.
둘째, 정의는 지나치게 영웅화된다. 강우석은 거의 성인군자에 가깝게 묘사된다. 실제의 검사 홍준표가 그러했든 아니든, 그는 권력과 시스템에 속해 있으면서도 전혀 타협하지 않는 이상적 인물로 그려진다.
이것은 현실과의 괴리를 만든다. 왜냐하면, 실제 검찰 조직은 결코 한 사람의 양심만으로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의는 제도 전체의 구조적 반성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지, ‘강직한 1인의 고군분투’로 설명될 수 없다.
셋째, 작품은 ‘불의는 악당, 정의는 검사’라는 도식을 깔고 간다. 이는 한국 사회의 폭력적 문제를 지나치게 ‘개인화’하는 한계로 이어진다. 강우석은 옳지만, 그는 구조의 변화를 이끌지 못한다. 결국 그는 ‘멋진 실패’로 소비된다.
3. 결론 – 지금 다시 보는 ‘모래시계’의 질문
2025년 현재, 우리는 또 다른 ‘모래시계’ 속을 살고 있다. 법은 여전히 빠르지 않고, 검찰 조직은 여전히 정치적이다. 폭력은 형태를 바꾸었고, 언론과 권력의 유착은 기술적으로 진화했다.
이제 중요한 건, 우리가 그 시절을 다시 이야기할 때, 무엇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가이다.
‘모래시계’는 한때 정의를 상상할 수 없던 시대에 던진 거대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질문이지, 답은 아니었다. 진짜 답은 우리가 지금 만드는 법과 제도, 그리고 윤리의식 안에 있다.